컴퓨터가 사람을 넘어선 두 장면
체스와 바둑에서 컴퓨터가 정상급 사람을 이긴 사건은 각각 큰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1997년 체스 컴퓨터 딥블루는 당시 세계 챔피언이던 가리 카스파로프와의 여섯 판 재대결에서 이겼습니다. 바둑은 둘 수 있는 경우의 수가 체스보다 훨씬 많아 컴퓨터가 정상급 기사를 이기려면 오래 걸릴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2016년 3월 서울에서 열린 다섯 판 대국에서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4승 1패로 이겼습니다. 이세돌 9단이 이긴 제4국은 지금도 자주 회자됩니다. 이후 두 게임 모두 공부와 연구의 방식이 크게 바뀌었습니다.
알파고가 남긴 것
알파고는 사람의 기보로 먼저 배운 뒤 스스로 대국을 두며 실력을 키운 프로그램입니다. 2015년 10월 유럽 챔피언 판후이 2단을 다섯 판 모두 이겼고, 2016년 이세돌 9단에 이어 2017년 5월에는 커제 9단을 세 판 모두 이겼습니다. 같은 해 사람의 기보 없이 규칙만 알고 스스로 두며 배운 알파고 제로가 발표되었고, 이어 같은 방식으로 체스와 일본 장기, 바둑을 함께 익힌 알파제로가 나왔습니다. 사람의 지식 없이 출발한 프로그램이 오랜 이론과 다른 수를 두면서도 이긴다는 점은 기사와 연구자에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바둑 초반 이론의 변화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초반입니다. 예전에는 화점에 놓인 돌 아래 삼삼에 일찍 들어가는 수를 상대에게 바깥 세력을 내주는 손해로 보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그런데 인공지능이 이른 시기의 삼삼 침입을 즐겨 두면서 지금은 프로 대국에서도 흔한 수가 되었습니다. 알파고가 이세돌 9단과의 제2국에서 5선에 둔 어깨짚기도 사람의 상식을 벗어난 수로 유명해졌습니다. 오래 쓰던 정석 중 일부는 덜 쓰이게 되었고, 인공지능이 선호하는 새 변화가 정석처럼 연구되고 있습니다. 다만 왜 좋은지 모른 채 모양만 따라 하면 이어지는 변화에서 길을 잃기 쉽습니다.
체스 연구의 변화
체스에서는 컴퓨터가 바둑보다 훨씬 먼저 사람보다 강해졌기 때문에 변화가 더 오래 쌓였습니다. 정상급 선수들은 오프닝을 준비할 때 컴퓨터로 수많은 변화를 미리 검토하고, 대국이 끝나면 분석 결과로 실수를 확인합니다. 그 결과 오프닝 준비가 매우 깊어졌고, 위험하다고 여겨 버려졌던 수가 컴퓨터의 검토를 거쳐 다시 쓰이기도 합니다. 엔드게임에서는 남은 말이 아주 적은 경우 모든 수를 끝까지 계산해 둔 자료가 만들어져, 그 끝판이 이기는지 비기는지를 확실히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형세 그래프를 볼 때 주의할 점
요즘 바둑과 체스 중계에서는 인공지능이 계산한 형세 그래프를 함께 보여 주는 일이 흔합니다. 판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몇 가지는 알고 보는 것이 좋습니다. 숫자 자체보다 그 숫자가 크게 움직인 장면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생각해 보는 것이 공부에 훨씬 도움이 됩니다.
- 바둑의 승률은 집 차이가 아니라 이길 가능성에 대한 추정이다
- 같은 판이라도 프로그램과 계산 시간에 따라 숫자가 달라진다
- 인공지능이 고른 최선의 수를 사람이 계속 이어 두기는 어렵다
- 그래프가 크게 움직인 수가 사람에게 쉬운 실수라는 뜻은 아니다
공부 방법은 어떻게 바뀌었나
예전에는 강한 사람의 지도나 책의 해설이 거의 유일한 정답의 출처였지만, 지금은 누구나 자기 대국을 인공지능으로 분석해 볼 수 있습니다. 어디서 형세가 기울었는지 바로 알 수 있게 되었지만, 처음부터 추천 수만 보면 스스로 생각하는 과정을 건너뛰게 됩니다. 먼저 혼자 복기해 결정적인 장면을 찾고, 그다음 인공지능의 판단과 비교하는 순서가 좋습니다. 추천 수가 내 생각과 다를 때는 그 뒤의 수를 직접 이어 놓아 보며 왜 더 나은지 설명할 수 있을 때까지 따져 보세요. 설명할 수 없는 수는 아직 내 것이 아닙니다.
대회와 공정성
인공지능이 사람보다 강해지면서 대국 중 몰래 컴퓨터의 도움을 받는 부정행위가 새로운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대면 대회에서는 대국장에 전자기기를 들이는 것을 제한하는 경우가 많고, 온라인 대국 사이트들도 부정행위를 막기 위한 장치를 운영합니다. 구체적인 규정은 대회와 단체마다 다르므로 참가하기 전에 공식 안내를 확인하세요. 친선 대국이라도 대국 중에 분석 프로그램을 켜 두는 것은 상대에 대한 예의가 아닙니다. 분석은 대국이 끝난 뒤 복기할 때 쓰는 것이 원칙입니다.
사람이 두는 대국의 의미
컴퓨터가 더 강해졌다고 해서 사람의 대국이 의미를 잃은 것은 아닙니다. 체스는 1997년 이후에도 세계 선수권과 각종 대회가 계속 열리고 있고, 바둑에서도 인공지능을 연구에 활용하며 자란 새 세대 기사들이 활약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대국에는 시간에 쫓기는 판단, 실수와 역전, 서로 다른 기풍이 만들어 내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인공지능은 그 이야기를 대신하기보다 더 깊이 이해하게 돕는 도구에 가깝습니다. 처음 배우는 사람이라면 규칙을 익히고 사람과 두는 즐거움을 먼저 느낀 뒤, 공부가 필요해질 때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순서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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